무속에서의 별비의 의미는 무엇인가?

  • 무속인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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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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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에서의 별비의 의미는 무엇인가?


별비

 

재수란 말이 금전이나 돈에 대한 운수를 강조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러면 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돈이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은 말한 필요도 없다. 돈이나 재산이 우리들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고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하여 제사를 받을 수 있다는 유교적 사고는 이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무속에서 돈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산은 신의 세계에서도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신에게 돈을 바친다. 지전이라 해서 돈 모양으로 오린 종이를 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굿을 할 때 지전이나 현금을 걸어 놓는다. 때로는 지전을 태워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굿에서 무당이 얼굴이나 치마끈, 가슴, 잔등에 종을 달고 춤추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이 돈은 '별비'라고 하는 것인데, 기분을 돋우기 위한 일종의 ''과 같은 것이다. 굿돈은 '몫돈' '별비'가 있다. 별비의 액수를 미리 약정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재수굿에는 이 별비가 많은데, 재수굿의 묘미는 바로 이 별비를 쓰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재수굿에는 별비가 중요하다.

 

무당의 능력에 따라 굿을 잘 하면 별비가 많이 생길 수 있으므로 별비는 무당의 능력을 발휘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몫돈과 별비가 많이 드는 재수굿은 다른 의례보다 규모가 큰 것이 상례다. 때로는 유교의 제사보다 십여 배 내지 수십배의 크기로 되는 경우도 있다.

 

제사의 경우는 신이나 조상에게 식사나 음식을 드리는 데 목적이 있으나, 굿은 신으로 하여금 즐겁게 놀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음식을 차려서 대접하는 경우에는 많이 차리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양이나 가짓구에 어는 정도 한계가 있으나 신의 기분을 좋게 하는 데는 그 한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면 할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좋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굿은 한없이 커질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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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추구하며 받은 별비의 모습

 

제사가 커지는 경우에는 사회적 체면이나 모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고, 그들이 먹을 음식 때문에 커지는 경우지만, 굿은 신의 만족을 위한 목적 때문에 커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굿 규모의 크기에 대한 여러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원칙적으로 굿은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재수굿에서 대감신처럼 욕심이 많은 신의 욕심을 채우고 만족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록 대감신뿐만이 아니다. 모든 신은 놀기를 좋아한다. 창부신이란 흔히 광대의 신이라고 하는데 '일상에 좋은 것은 떵더꿍이요, 평생에 좋은 것은 깡깡깡이요'라는 무가를 부르는 것을 보면 항상 음악과 노래와 춤에 싸여 놀기를 좋아하는 신이다. 굿은 이러한 신들이 좋아하는 악기를 갖추어 음악을 반주하면서 춤과 노래를 연기한다.

 

제사에서는 이런 성격을 찾아볼 수 없다. 비록 춤과 노래를 좋아하던 조상이라 하여도 춤과 노래로 제사를 받지는 않는다. 굿은 즐거움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커지게 되는 것은 논리상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산신이나 조상신 모두가 춤과 노래로 즐겁게 노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굿은 춤과 노래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것이 한국 샤머니즘의 커다란 특징이다. 단순히 샤머니즘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우리 민족이 고대로부터 춤과 노래를 좋아하던 습속에서 연유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우리 민족이 춤이나 노래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가졌었고 여기에 샤머니즘을 수용하여 예술화.종교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 굿은 이들 신을 위한 예술성이나 중요성 때문에 많은 돈이 필요하다.

 

굿에서 돈을 드리지 않고는 신을 즐겁게 할 수 없다. 돈은 현세에서도 가치가 있으나 의례에 있어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죽은 이를 좋은 곳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의례, 즉 사령제인 지노귀굿(일명 오구굿, 씻김굿)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죽을 때는 재산을 남겨야 한다.

 

물론 자식을 남기면 자연 자식들이 굿을 할 것이라고 믿어도 좋으나 그 자식이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굿을 할 수 없다면 죽은 영혼은 그대로 불행한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자식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굿을 한다는 보장도 없다. 유교의 제사는 사회적 윤리 도덕이란 효행으로 제도화하고 있으나, 굿은 원래 경제적 사정에 의한 것이 된다.

 

자손을 남기면서 동시에 재산과 신앙심을 남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경제적 형편이 보다 강조된다. 즉 무속은 경제적 능력을 매우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굿에서 신을 즐겁게 하면 즐거움을 받은 신이 마음이 동해서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신앙적 기대가 있다. 즉 단순히 감사하는 마음에서 굿을 하는 것이 아니고, 즐겁게 하여 주었으니 은혜를 받을 것이라는 상호관계적 기대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인이 지니는 의식구조의 일면을 알 수 있다. 일단 누구에게 좋은 일을 한 다음에는 반드시 보수를 기대한다.

 

그냥 감사하는 마음에서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선행에 대한 보수를 기대하는 사고 구조의 반영이다. 선물에 있어서도 순수한 의미보다는 그것으로 인한 기대를 동반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선물이 자칫하면 '뇌물'이 되기 쉽다.

 

굿에서는 돈을 주고 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상징적인 의례가 있다.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는 굿에서 무녀는 여러 가지 상징적인 연기를 하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인정' 쓰는 것이다. 인정이란 저승에 가기 위한 비용을 말한다.

 

굿의 거리에서는 조상신이 왔다가 갈 때 자손들에게 '노자'를 달라고 한다. 저승까지 가는 길이 멀고 험난해서 그 기간 동안에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그 노자 가운데는 영혼을 데려가는 사제게게 '인정'을 쓰는 돈이 포함되어 있다. 사자가 저승으로 가는 도중 어려운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뇌물처럼 인정()을 쓴다. 사제가 저승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방해를 할 경우 돈을 주고 타협하기 위함이다.

 

'인정 쓰고 저승 가는' 이러한 사고가 굿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여가 나갈 때나 결혼식 전야에 함지고 가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인정과 비슷한 돈을 쓴다. 어떤 일에 대한 보수로 돈을 주는 것이 아니고 인정처럼 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에게 일과 노동에 대한 보수로 돈을 바치는 게 아니라 인정이나 별비처럼 쓰는 것으로 관념화되어 있다.

 

그래서 돈으로 신이나 인간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한국인의 돈에 대한 감각을 낳았다. 단적으로 얘기하면 지나치게 돈의 향락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경향 때문에 한국인이 돈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는 결과를 낳은 것 같다. 이러한 의식은 어떤 면에서는 자본주의 토착화를 앞당기는 기반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바대로 현금주의, 배금주의 사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 무속인나라 공식 협력업체 한국무속협동조합 - 무속신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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