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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혀지지 않은 백제의 위세

  • 무속인나라
  • |
  • 2017-04-04
  • 조회수 722

밝혀지지 않은 백제의 위세


삼국사기에 나타난 백제의 건국

 

여러 곳의 왕검들이 나와 특산물을 바치며 이로써 귀화하는 자가 천여 명, 천지(天地)의 사이에 언제부터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인간이 살아오면서 만든 역사의 시초와 종말은 그 근원을 추적하여 볼 때 불가사의의 신비한 일들이 많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신화라고 말한다.

 

이러한 옛날의 이야기들은 과학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론이 성립될 수 없다. 그러나 종교적인 원형에서 그 사실을 논거해 본다면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는 진지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의 신화를 유추하여 보면 신성하기도 하지만 허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 고대국가의 형성과 관련하여 밝혀보면 민속신앙과 많은 부분이 연관 지어진다.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신화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1.JPG

1. 북부여에서 주몽이 태어나서,

2. 졸본부여에서 고구려 동명왕이 되고

3. 그 아들 온조가 남쪽에 와서 백제의 왕이 되었다.

 

후한서, 삼국지 등의 고구려 시조 동명의 이야기에 백제의 시조로서 구대란 인물이 등장한다. 새밝(東明)의 후손이 밝내 임금이 되었다는 것은 북에서 나서 동에 솟아난 해가 남에 이르게 되었다는 해의 윤동설과도 관계가 깊다.

 

밝내는 불류수, 패수(浿水), 열수(列水), 백하(白河), 평주(平州) 등과 같은 뜻을 가진다. 이러한 지명들은 오늘날 중국의 북경에 있었는데 구대가 세운 밝내도 그 지방에 있었다. 고구려와 마한, 백제는 원래 북경지방에서 떨친 나라들이므로 그 후의 정사인 송서(宋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있다.

 

“백제는 원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 1천리에 있었다. 그 후 진나라 때 고구려는 요동을 차지하고 백제는 요서를 차지하여 진평군을 두고 있었다. ” 백제 건국에 등장하는 우대는 누구인가 우대의 백제건국 이야기를 실은 <북사(北史)>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백제는 진(; 265~316, 317~420), (; 420~479), (; 579~502) 때에는 강의 좌우, 즉 양자강 양쪽 해안지방을 차지하고 중국과 수교하여 사신을 자주 교환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반도 서해안 중남부에 처음부터 있었던 나라라고 알고 있다면 오늘날의 사가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역사 속에 다시 되돌려 놔야 할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백제의 시조는 불류다. 그의 아버지 우대는 북부여 임금 해부루의 후손이다.

 

우대는 북부여에서 졸본(卒本)으로 이사하여 그곳 사람 연타발의 딸 소서노(召西奴)와 혼인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 아들은 불류, 작은 아들은 온조였다.

우대가 세상을 떠나고 소서노가 혼자 살고 있는데 주몽이 부여에서 졸본으로 와서 소서노와 결혼하였다.

 

소서노는 주몽을 도와서 새나라 고구려를 세우는데 공이 컸으므로 주몽 임금은 이 왕비를 극진히 사랑하였던 것은 물론이고 불류와 온조도 친아들처럼 사랑하였다.

 

그런데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 유류(儒留)가 찾아와 태자가 되고 다음 왕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불류가 온조(溫祚)에게 말하기를주몽대왕이 처음 부여에서 오셨을 때우리 어머니께서 가재를 기울여 이 나라를 세우셨는데, 대왕께서 세상을 떠나고 유류왕이 계승하였으니, 우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좋은 곳을 찾아 남쪽으로 가서 새 나라를 세우자.” 그래서 불류는 아우 온조와 함께 많은 무리를 이끌고 패수(浿水)와 대수(帶水)를 건너 미추홀에 이르러 백제를 세웠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연대적으로 믿을 것보다 그 내용 속의 속뜻을 이해하면 신화로서 신비함이 더하리라 본다.

 

오행 상생의 이치십제에서 백제로 불류와 온조는 오간(烏干), 마려(馬黎) 등 열 사람의 신하와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이동 하였는데 불류는 강북의 미추홀에 정착하였고, 열 사람의 신하와 온조는 강남으로 와 위례성(慰禮城)에 도읍 하였는데 10()라고도 하였다.

 

불류미추홀에서 살다 땅의 저습함과 농사가 되지 않으므로 그곳에서 살지 못하고 아우에게로 가 살게 되었는데 그 후 나라가 크게 되어 십제를 백제로 개명하였다.

 

이러한 이치는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의 오행 상생의 이치를 따른 것이고 온조와 함께 이동한 오간(烏干)의 까마귀()는 일중(日中)의 금오(金烏), 마려(馬黎)는 말()일중의 말이다. 그러므로 백제는 말한(馬韓)에서 유래된다고도 한다.

 


 

- 무속인나라 공식 협력업체 한국무속협동조합 - 무속신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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